[쿠키 사회] ◇ 대구교보문고 지하 핫트랙에 가보니…

예전 다이어리가 아니라고 한다. 사실일까? 확인하고 싶어 요즘 10~20대들에게 '꿈의 문고센터'로 불리는 대구 교보문고 지하에 있는 핫트랙의 한 코너, 디자인 다이어리 매장을 둘러봤다.

성수기(매년 10월 중순~12월)가 지났음에도 학생들로 북적댔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요즘 디자인처럼 알록달록하고 개성만만했다. 저들이 저러니 다이어리도 변할 수밖에 없겠다. 한창 때면 45개 다이어리 브랜드가 이 매장으로 몰려든다. 매장에는 150종이 넘는 별의별 다이어리가 깔려 있었다.

거기서 만난 류수민 양(16)은 "다이어리는 바로 '나'이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고가라도 맘에 들면 반드시 산다. 요즘 다이어리는 일기만 적지 않는다. 내 생활과 관련된 모든 걸 다 올린다. 심지어 영화티켓까지도 꽂아둔다"고 말했다.

10~20대를 겨냥한 다이어리에는 흑백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화려한 그림이 올려진 '일러스트 다이어리류'가 대세다. 하지만 30대 이상 직장인들은 좀 다르다. 아직 무채색톤의 정통 스타일의 업무용 다이어리에 치중한다. 양지 다이어리와 함께 1988년 태어난 오롬시스템(주)이 사무용 다이어리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특히 오롬은 95년부터 송아지 가죽으로 만든 양장 커버에 1일 기록지, 그리고 필기구까지 꽂도록 된 'VIP용 고급 포켓 다이어리 시대'를 만들고 있다. 오롬이 생산한 것 중에 가장 비싼 건 출산을 앞두고 있는 여성들을 겨냥한 17만원짜리 젬 다이어리(Gem Diary). 2003년 나온 이 다이어리는 임신 1주일부터 출산 24개월까지 전국 산후조리원 현황, 각종 예방주사 접종시기, 임신 중 체력관리 및 식이요법 등 관련 정보가 총정리돼 있다. 오롬은 소유자의 이름이니셜을 은박, 금박, 불박 등으로 무료로 각인해준다.

다이어리는 '프랭클린 플래너' 등 전통적 기능에 역점을 둔 '시스템 다이어리'와, 카툰 및 일러스트로 미적 요소를 강조한 '캐릭터(디자인) 다이어리'로 대별된다.

프랭클린 플래너, 오롬 다이어리 등 주 타깃을 직장인으로 잡고 있는 시스템 다이어리는 자기계발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현대인들의 시간관리 및 성과관리를 위한 도구로 각광받고 있다. 주간·월간·연간 속지도 별도로 판매한다. 교보문고측은 지난 연말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100인을 선정해서 관리하면 인생이 달라진다'는 모토를 걸고 목표 설정과 인맥 관리에 중점을 둔 15만원짜리 '셀프 코칭 다이어리'를 내놓아 화제가 됐다. CEO는 수입품 MCM, 루이 까또즈 등 평균 10만원 이상 고가 다이어리에 관심을 보인다. 특히 올해는 업체들이 월 14일을 '다이어리 데이'로 설정했다. 물론 화이트 데이(3월14일), 블랙 데이(4월14일)에서 힌트를 얻은 발상이다.

최근에는 다이어리 북도 나온다. 다이어리의 기능에 월별 추천 여행지 등 풍부한 여행 정보를 접목시킨 신개념 여행 수첩 '트래블+다이어리'(위즈덤하우스 간)이다. 1년을 52주로 나눠 각 주마다 적합한 여행지를 숙박 및 교통 등의 정보와 함께 소개하고, 전국 유명 맛집 600곳도 별도로 열거했다.

◇일러스트 다이어리 올해도 폭발적인 인기

현재 핫트랙에서 가장 인기 있는 건 육심원 다이어리(AM 갤러리)와 7321의 앨리스와 도로시 다이어리.

이들 때문에 디자인 다이어리, 일명 '일러스트 다이어리 시대'가 열린다.

이 흐름을 주도한 건 이화여대 출신 동양화가 육심원씨(33). 그녀는 본인 이름을 걸고 그림을 일기장, 수첩, 사진첩, 휴대전화 고리, 책갈피, 가방 등의 미술상품으로 제작했다. 1년만에 매출액이 24억원에 달했다. 그림은 전시회 이틀만에 모두 판매됐다. 한국 미술역사상 5번째 개인전을 연 젊은 작가가 자신의 미술상품 브랜드를 이만큼 성장시킨 사례가 있을까. 그녀는 못생겨도 깜찍하고 이지적이며 풋풋한 '21세기형 미인도'를 그려 다이어리에 올렸다.

육심원 다이어리 중 가장 화제를 모은 게 10년짜리 다이어리(3만9천원). 다이어리를 펼치면 2007년부터 2016년까지 10칸의 일기 쓸 공간이 있다. 한 해 적고 다음 칸엔 그 다음해의 일기를 적어내려가면 된다.

지난해 9천800원짜리 그림 있는 앨리스 다이어리도 엄청 팔렸다. 누렇게 빛바랜 재생지 톤의 커버에 미국서부시대를 연상시키는 그림이 찍혀있다. 내용도 여학생들이 혹하게 매치시켰다. 마이 컬처 코너에선 새롭게 사귄 이성 친구와의 각종 얘깃거리를 적도록 했다. 커버(1천원)도 새로 갈 수 있다.

일러스트 다이어리는 가격도 만만치 않다. 각종 아이디어가 총투입된 만큼 원가도 평균 1만~2만원선.

◇ 도대체 수첩이야 책이야 아님 혹시 액세서리?

비밀유지? 아니다. 이젠 오픈이다.

무채색? 아니다. 컬러풀이다.

노트라고? 아니다. 액세서리용 책이다.

달라진 다이어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제 다이어리는 책과 수첩을 합쳐놓은 '아트북(Artbook)'으로 진화했고 베스트셀러북으로도 발돋움했다. 물론 이 흐름과 무관하게 정통 다이어리 시장을 지키는 브랜드도 있다.

다이어리가 인기를 끌면서 '예쁜 손글씨 쓰기(POP 글씨)'까지 덩달아 각광받고 있다. 인터넷 카페 '다이어리 꾸미기'에는 글씨 예쁘게 쓰는 법에 대한 정보를 나누는 코너가 따로 있다. 최근 출시된 다이어리들은 젊은 세대의 이런 '혼자 놀기'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이어리 곳곳에 계절과 시즌에 맞는 살빼기 정보, 탄생석 정보 등 읽을거리를 넣어둔다. 기계로 많이 찍어낸 닮은 꼴 다이어리는 DIY 계열의 수제품한테 밀릴 수밖에 없다. 일기장을 사러 문방구로 몰려가던 시절은 끝났다.

거기서 팔리는 건 고작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을 겨냥한 그림 일기 노트 정도. 이젠 팬시전문 문구점에서 그걸 더 많이 판다. 그들에겐 이 다이어리는 1년간 동고동락할 수 있는 '애완북'인 셈. 다이어리 작성할 때 볼펜만 있으면 안 된다. 포스트잇, 스티커, 3색 볼펜, 색연필, 가위와 풀 등을 구비해 놓는다. 다이어리에 온갖 기념물 등을 오려 붙일 수 있게 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제휴사/영남일보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